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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야독

오늘의 사자성어, '가담항설'에 대해 알아보자.

by OK2BU 2025. 6. 3.

세상의 말,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

우리 사회는 늘 말과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오늘날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진실과 허위가 뒤섞인 수많은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를 떠돈다. 이때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어떤 이야기를 경계해야 할까?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등장하는 사자성어가 **‘가담항설(街談巷說)’**이다.

이 사자성어는 겉보기에는 단순히 “길거리의 이야기”를 뜻하는 듯하지만, 그 속에는 여론, 소문, 민중의 인식, 그리고 권력과 진실의 긴장 관계가 담겨 있다. 본문에서는 ‘가담항설’의 어원적 해석, 문학적 의미, 정치적 함의, 현대 사회에서의 적용까지 종합적으로 조명해본다.


‘가담항설(街談巷說)’의 어의와 유래

한자 분석

  • 街(거리 가): 대로, 넓은 길
  • 談(말씀 담): 이야기, 말
  • 巷(거리 항): 좁은 골목, 뒷골목
  • 說(말씀 설): 설화, 말, 주장

이 네 글자를 결합하면 “거리의 이야기와 골목의 말”, 즉 길거리에서 오가는 소문이라는 뜻이 된다. 여기에는 특별히 권위 있는 정보원이 아닌, 민중이나 대중의 입에서 떠도는 이야기라는 암시가 담겨 있다.

사자성어의 기원

‘가담항설’이라는 표현은 중국 한나라와 위진남북조 시기 이후 문헌에서 간간이 나타나며, 조선 시대 실학자 및 사대부들의 글에서도 자주 인용되었다. 주로 소문, 민심, 풍문, 또는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를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

예컨대 『논어』나 『맹자』 같은 유교 경전에서는 백성의 말을 존중하되, 무분별한 풍문을 따르지 말 것을 경계하고 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도 ‘가담항설’에 휘둘리지 않는 합리적 판단을 중시했다.


문학적·철학적 해석

민중의 목소리인가, 허위의 말인가?

‘가담항설’이라는 표현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민중이 형성한 여론, 즉 시대의 감정을 반영하는 순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무분별하고 왜곡된 소문, 즉 오류와 왜곡의 가능성을 경고하는 역기능이다.

  • 순기능: 민중의 정서와 생각이 드러나는 집단 무의식.
  • 역기능: 출처 없는 헛소문이 진실처럼 유통되며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

따라서 ‘가담항설’은 비판적 수용이 필요한 개념이며,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지적 태도가 동반되어야 한다.

공론장의 형성

현대 정치철학자인 하버마스는 ‘공론장(public sphere)’ 개념을 통해 시민들이 사회 문제를 논의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과정을 강조했다. ‘가담항설’은 전근대적인 공론장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

길거리와 골목이라는 공간은 문자 그대로 서민들이 의견을 나누는 장소였고, 이는 곧 권력 감시와 비판의 기능도 수행하였다. 그러나 과도하게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인 소문은 오히려 혼란과 선동의 도구가 되기도 했다.


역사 속의 ‘가담항설’

조선시대: 민심을 읽는 창

조선 시대 왕들과 관료들은 백성들의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 ‘가담항설’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민중의 소문이 국정 방향에 영향을 준 기록이 종종 등장한다.

예를 들어 세종은 백성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기 위해 암행어사나 상언제도를 활용했으며, 백성의 소리를 국정에 반영하려 노력했다.

오해와 선동의 사례

반면 ‘가담항설’이 부정적으로 작용한 대표적 사례는 정여립 모반 사건이다.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들이 확대 재생산되며, 정치적 숙청이 정당화되었다. 이처럼 소문이 진실을 압도하는 위험은 고대로부터 늘 존재했다.


현대 사회에서의 ‘가담항설’

SNS 시대의 소문

21세기의 SNS는 현대판 ‘가담항설’의 무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을 통해 출처 불명의 정보가 급속히 퍼져나가는 현상은 사자성어의 현대적 재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가짜 뉴스, 유언비어, 루머의 생산과 유통은 디지털 사회의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보의 진위를 판별하는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언론과 여론의 관계

언론은 종종 ‘가담항설’을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확대 재생산한다. 이때 문제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진실처럼 보도될 때,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이다. 대표적으로 정치 스캔들, 연예인 루머, 기업 악성 루머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처럼 오늘날 ‘가담항설’은 단순한 소문을 넘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정보의 흐름을 뜻하는 말로 이해될 수 있다.


현대적 교훈과 실천적 태도

비판적 사고의 필요성

‘가담항설’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다음과 같다.

“정보의 진위를 가리는 능력이야말로 지성의 핵심이다.”

무비판적으로 소문을 수용하는 태도는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으며, 개인에게도 큰 피해를 준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다음과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한다.

  • 출처가 불명확한 정보는 유보하거나 검증한다.
  • 감정적 반응보다는 이성적 판단을 우선시한다.
  • 여론에 휘둘리기보다는 근거와 맥락을 파악한다.
  • 다양한 관점을 접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춘다.

공감과 경청의 자세도 필요

다만 모든 ‘가담항설’을 무조건 배척해서는 안 된다. 때때로 거리와 골목의 소리는 공식 기록보다 더 생생한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민중의 소리는 권위 있는 목소리보다 더 정확하게 현장의 고통과 욕구를 담아낸다.


결론: 소문 속의 진실을 분별하는 힘

‘가담항설(街談巷說)’은 단지 길거리의 이야기나 헛소문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사회의 정보 순환, 여론의 형성, 권력과 대중의 긴장 관계를 압축한 철학적 표현이다. 이 사자성어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 믿는 것은 진실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만든 말인가?”

진실은 때로 권위 있는 문서 속이 아니라, 사람들의 입속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말들이 언제나 진실인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담항설’을 두려워하지 않되, 그 이면을 읽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오늘도 수많은 말이 거리를 떠돈다. 그 중 어떤 말이 진짜이고, 어떤 말이 허상인지를 가르는 것은 우리 각자의 지성, 양심, 판단력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시민적 교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