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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야독

오늘의 사자성어, '지척지지'에 대해 알아보자.

by OK2BU 2025. 5. 14.

사자성어는 고대의 지혜와 통찰을 네 글자에 압축해 담은 언어문화의 결정체다. 그중에서도 ‘지척지지(咫尺之地)’는 짧고 간결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공간적 개념을 넘어 인간관계, 사회구조, 심리학적 통찰까지 아우른다. 본 글에서는 지척지지의 어원과 의미, 유사 사자성어와의 비교,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의 활용 사례 등을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지척지지(咫尺之地)의 어원과 의미

‘지척지지’는 한자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글자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 咫(지): 약 8치(약 24cm)의 거리. 손바닥 너비로도 해석된다.
  • 尺(척): 약 10치(약 30cm)의 거리.
  • 之(지): ~의.
  • 地(지): 땅, 장소.

즉, ‘지척지지’는 직역하면 ‘지척의 땅’, 곧 아주 가까운 거리나 장소를 뜻한다. 여기서 말하는 ‘가까움’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거리나 관계의 밀접함까지도 내포할 수 있다.

고전 문헌에서는 이 사자성어가 종종 나라의 경계, 인접한 이웃, 혹은 아주 가까운 장소를 언급할 때 사용되었으며, 이웃 국가 간의 외교 관계, 혹은 인간 간의 상호작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데 자주 사용되었다.


고전 속 지척지지의 활용 예시

사자성어는 종종 고전 문헌 속 문맥과 함께 해석되어야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지척지지’도 마찬가지다.

중국 한나라 시기의 정치 철학서나 외교문서에서는 “지척지지라도 도리가 다르면 나라는 멀리 있다”는 식의 표현이 등장한다. 이는 물리적으로 가까운 국가일지라도 이념이나 정치적 목적이 다르면 교류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렇듯 지척지지는 단순한 거리 개념을 넘어서 ‘근접하지만 멀게 느껴지는’ 양면적 속성을 품고 있다.

예를 들어, 《전국책(戰國策)》에서는 지척지지를 언급하며, 이웃 국가 간의 불신과 갈등을 묘사하기도 한다. “지척지지라 할지라도 심중은 천리와 같도다(咫尺之地, 心如千里)”라는 문장이 대표적이다.


유사 사자성어와의 비교

‘지척지지’와 유사하거나 반대되는 의미를 가진 사자성어는 다양하다. 이를 비교해보면 ‘지척지지’의 의미가 보다 선명해진다.

  • 지척지간(咫尺之間): ‘지척지지’와 유사하며, 매우 가까운 거리라는 의미다. 지척지지보다 더 자주 쓰이며, 보통은 물리적 거리만을 가리킨다.
  • 천리길도 한걸음부터(千里之行 始於足下): 멀리 떨어진 거리 개념을 강조하며, 대조적으로 ‘지척’이라는 근거리 개념과 비교된다.
  • 면종복배(面從腹背): 가까운 거리에서도 마음은 다른 사람을 향해 있다는 의미로, ‘지척에 있어도 마음은 멀다’는 지척지지의 숨은 의미와 맞닿아 있다.
  • 이심전심(以心傳心): 비록 물리적 거리는 멀지만, 마음은 서로 통해 있다는 뜻으로, 지척지지와 반대 개념에서 공명하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의 지척지지

심리적 거리로서의 지척지지

현대 사회에서 ‘지척지지’는 단순한 공간 개념보다는 심리적 거리를 설명하는 데 자주 활용된다. 가령, 가족 구성원들이 같은 집에 살아도 서로 마음을 나누지 않으면 오히려 타인보다 더 먼 관계가 되기 쉽다. 이때 ‘지척지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지척인데도 불구하고 단절된 공간”**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현대인의 고립, 고독사 문제, 혹은 인간관계 단절 현상을 설명할 때도 이 표현이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수많은 이들과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옆에 있는 사람과는 진정한 소통이 어렵다는 현실 속에서 지척지지는 반어적 의미로 변주되어 쓰이기도 한다.

도시 공간과 지척지지

도시계획이나 사회학에서도 이 사자성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울, 도쿄, 뉴욕처럼 고밀도 도시에서는 물리적 거리로는 가까운 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있다. 그러나 그들 간의 관계는 단절되어 있다. 이는 물리적 ‘지척’과 관계적 ‘단절’이라는 모순된 상태로, 현대 도시의 비인간화를 비판하는 데 이 표현이 비유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지척지지의 철학적 해석

‘지척지지’는 단지 거리에 대한 표현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관계성과 상호작용을 성찰하게 만든다. 가까움은 거리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소통과 이해, 공감에서 비롯된다.

노자(老子)는 "멀리 있는 사람도 뜻이 같으면 벗이 되고, 가까운 사람도 뜻이 다르면 적이 된다"고 했다. 이 말은 ‘지척지지’라는 개념을 더 심화시킨 철학적 통찰이다. 따라서 지척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이해하고 통하는 관계는 아니며, 반대로 물리적으로 멀리 있어도 정신적으로 가까울 수 있다는 이중성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지척지지와 미래 사회의 방향성

앞으로의 사회는 기술의 발전으로 더 많은 ‘가까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메타버스, 인공지능, 디지털 휴먼 등으로 인해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재정의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진정한 ‘지척’은 마음의 공감과 이해에서 비롯된 관계다.

이때 ‘지척지지’라는 사자성어는 물리적 거리를 좁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계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진정한 가까움이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한다.


결론: 사자성어를 통한 현대적 성찰

‘지척지지’는 네 글자에 불과하지만, 인간관계, 사회 구조, 철학적 존재론 등 다양한 분야에 통찰을 제공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가까운 듯 멀고, 먼 듯 가까운’ 관계가 점점 일반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시대일수록 진정한 가까움의 본질을 되새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 사자성어를 단순한 고사성어가 아니라, 삶의 태도와 인간관계의 지침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 풍요롭고 성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결국 ‘지척지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진정으로 가까이 두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