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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백서

묘지에도 사용기간이 있다?, 한시적 매장 제도란.

by OK2BU 2023.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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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에는 사용 기한이 없는 걸까요? 한번 만들어진 분묘가 계속 간다면 무덤은 계속 늘어나 언젠가는 국토 전체가 무덤으로 뒤덮일지도 모를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고자 정부는 2000년 ‘한시적 매장제도’를 도입했습니다. 2001년 1월 13일 이후 전국의 공설묘지 및 사설묘지에 설치된 분묘의 사용 기한을 기본 15년으로 하고 3번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용 기한이 지난 분묘는 개장한다는 방침이었습니다.

 

묘지
한시적매장제도
묘지사용기간
합법적으로 지어진 분묘 수로, 아예 신고되지 않은 묘나 연고가 끊긴 무연분묘는 훨씬 많은데 공공·사설묘지만 정리해선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러나 첫 기한이 도래한 2016년 1월 이 법은 적용되지 못했습니다. 묘를 정리할 준비가 안 된 탓에 사용 기한 2주를 남기고 정부와 국회는 급하게 분묘 사용 기간을 15년 더 연장했습니다. 이제 그 기한이 약 7년 남았습니다. 전문가들은 지금부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전국에 방치된 묘소를 정리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매장 시한이 지난 묘를 정리하려면 일단 전국의 묘지 현황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자칫 애꿎은 묘를 파헤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2010년 한 차례 표본조사를 진행한 뒤 전국 실태조사는 사실상 포기했습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대한지적공사(현 한국국토정보공사 LX)에 묘지 일제조사 시범사업 연구용역을 맡겼습니다. LX는 경기 안산시 상록구, 충북 옥천군 안남면, 전북 장수군 장수읍, 전남 장흥군 장평면, 경남 남해군 삼동면 등 5곳을 표본으로 선정해 묘지 전수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전체 묘지의 15.6%가 무연분묘로 추정된다는 결론까지 도출했습니다.

 

문제는 이를 전국으로 확대했을 때의 비용이었습니다. 무연분묘 실태조사는 묘가 언제 설치된 것인지, 연고자가 있는지 등을 정확하게 조사해야 하므로 조사원이 직접 현장에 가서 육안으로 일일이 확인해야 합니다. 예산을 가장 낮게 잡아도 조사 비용으로만 2221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됐고, 개장한 유해를 다른 데 묻거나 뿌리는 데는 최소 수조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이었습니다. 결국 정부는 일단 사업을 뒤로 미루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2027년까지 지자체와 협의해 사전 준비를 마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8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상황이라 지자체 반응은 회의적입니다.

 

무엇보다 국민적 관심이 부족한 탓에 묘 정비사업의 동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2010년 시범조사에 참여했던 지자체의 한 묘지 관리 담당자는 “묘 문제에 지자체가 매진하면 국회의원부터 주민들까지 ‘왜 예산을 그런 곳에 쓰느냐’며 차라리 다리를 하나 더 놓고 도로포장을 하라고 반발한다”고 전했습니다.

 

1961년 장사법이 생긴 이래 묘 관리는 점차 체계화되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한시적 매장제도가 도입된 사실을 모르는 국민이 많은 데다 장묘 문화는 오랜 관습이 지배하고 있는 탓에 정부나 지자체가 먼저 나서서 묘를 파야 한다고 설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묘지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면이 있어 정서적인 부분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국민 정서는 고려하지 않은 채 법으로 정한 처벌이 너무 무거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장사법 40조를 보면 묘 사용 기한이 끝났는데도 시설물을 그대로 두거나 유골을 화장 또는 봉안하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조상 묘를 파지 않았다고 범죄자로 만든다”는 반발도 나옵니다.

 

임상규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장사법의 처벌과 그 문제점’(2016) 논문에서 “매장과 같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관행적 행위를 바로 범죄로 규정할 일은 아니다”라며 “처벌보다 시정명령과 이행강제금의 부과와 같은 행정제재가 먼저 투입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복지부에 따르면 한시적 매장제도의 적용 대상이 되는 묘는 전국 64만 5000여개로 파악됩니다. 그러나 이는 합법적으로 지어진 분묘 수로, 아예 신고되지 않은 묘나 연고가 끊긴 무연분묘는 훨씬 많은데 공공·사설묘지만 정리해선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태복 한국토지행정학회장은 “시한부 매장제도는 우리나라 화장률이 35% 수준일 때 매장 묘지 억제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한 것이어서 현시점에선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며 “차라리 이 제도를 없애고 기존의 공동묘지 등을 재정비하는 사업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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