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경야독

오늘의 사자성어, '각골통한'에 대해 알아보자.

by OK2BU 2025. 6. 13.

사자성어는 단순한 네 글자의 조합을 넘어, 깊은 역사성과 인간 감정의 복잡성을 농축한 언어예술이다. 그중에서도 **‘각골통한(刻骨痛恨)’**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깊은 수준의 후회와 원한, 슬픔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고사 속 사연과 현대적 해석을 함께 고찰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각골통한의 어원과 문자적 의미

‘각골통한(刻骨痛恨)’은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 刻(새길 각): 새기다, 각인하다. 주로 돌이나 뼈에 무언가를 새긴다는 뜻이다.
  • 骨(뼈 골): 말 그대로 ‘뼈’를 의미한다. 감정의 깊이가 단순한 마음을 넘어 육체의 중심, 뼈까지 스며들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痛(아플 통): 고통, 아픔을 나타낸다.
  • 恨(한할 한): 원한, 후회, 미련의 감정이다.

이를 종합하면 **‘뼈에 새겨질 정도로 깊은 아픔과 후회’**를 뜻하며, 주로 씻을 수 없는 슬픔이나 원한, 평생 지워지지 않는 통한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


유래: 고사 속 ‘각골통한’의 기원

각골통한이라는 표현은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직접적으로 배경으로 하지는 않지만, **한(恨)**이라는 개념은 중국과 한국의 고대문학 속에서 빈번히 다뤄진 정서 중 하나다. 특히, 원한과 슬픔의 감정을 뼈에 새긴다는 표현은 **《사기(史記)》**나 《한서(漢書)》 등의 역사서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가장 자주 인용되는 비유 중 하나는 억울하게 죽음을 맞은 충신이나 장수가 남긴 유언에서 비롯된다. 예컨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군주나 권신에 대해 "나는 이 통한을 뼈에 새기고 죽노라"는 식의 문구는 후대에 문학화되며 각골통한이라는 사자성어로 굳어지게 되었다.


감정의 층위로 본 각골통한

단순한 후회와의 차이점

보통의 ‘후회(後悔)’는 지나간 일에 대한 아쉬움이 중심이지만, ‘각골통한’은 후회, 원한, 슬픔, 분노 등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감정이다. 그것도 아주 지속적이고 깊은 수준에서다. 단기적 감정이 아니라 삶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감정적 상처로 인식된다.

고통의 내면화

각골통한은 단순히 "잊지 못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의 저장이 아닌 감정의 각인이다. 사람들은 어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지만, 각골통한에 해당하는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뚜렷하게 자리잡는 경향이 있다. 특히 죄책감이나 억울함에서 비롯된 각골통한은 정서적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문학과 예술 속 각골통한

문학과 예술은 종종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각골통한은 여러 고전 문학 속에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고전소설 속의 각골통한

  • 춘향전: 변학도의 모욕과 감금에도 굴하지 않은 춘향의 감정은 단순한 절개를 넘어서, 이루어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랑에 대한 각골통한의 정서를 담고 있다.
  • 홍길동전: 부당한 차별과 출신 신분에 대한 한은 결국 홍길동이 나라를 떠나는 동기를 제공하며, 이는 그의 내면에 자리잡은 각골통한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시문학 속 표현

  • 조선 후기의 시인 정약용은 유배지에서의 심정을 “뼈에 사무친다”고 표현한 바 있다. 이는 각골통한이 망각할 수 없는 실존적 고통임을 보여준다.

현대 사회에서의 각골통한

오늘날에도 우리는 각골통한을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경험하거나 목도할 수 있다.

전쟁과 학살의 피해자들

한국 현대사 속 대표적인 각골통한의 사례는 6.25 전쟁과 제주 4.3 사건, 세월호 참사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잃은 이들의 감정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대물림되는 감정적 아픔이다.

개인적 비극의 기억

  • 가족을 부당하게 잃은 사람들
  • 배신으로 인한 인간관계의 파괴
  • 복구할 수 없는 실수나 선택

이러한 사건들은 기억의 범위를 넘어서 정체성과 인생관을 뒤흔드는 영향을 끼치며, 이는 곧 각골통한의 정서로 구체화된다.


심리학적 관점에서의 해석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심층 정서를 ‘복합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Complex PTSD)’와 유사한 것으로 본다. 각골통한은 다음과 같은 양상으로 나타난다.

  • 반복적 회상
  • 특정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함
  • 감정이 억눌리는 대신 지속적으로 자극됨
  • 자아 형성과 삶의 방향성에까지 영향을 줌

이는 단순히 잊지 못하는 차원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통합된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각골통한의 긍정적 전환 가능성

아이러니하게도 각골통한은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아픔을 계기로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기도 한다.

예술과 창조의 원천

예술가들 중에는 지우지 못한 각골통한을 예술로 승화한 이들이 많다. 그 고통은 창조력의 근원이자, 관객과의 정서적 공명을 가능케 하는 통로가 된다.

정의와 사회운동의 동력

역사적 비극에서 비롯된 각골통한은 종종 정의 구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피해자 유족의 끈질긴 노력은 진상규명과 사회개혁을 이끌며, 고통의 사회적 의미를 확장시킨다.


결론: 인간 존재의 뼛속까지 아린 정서, 각골통한

각골통한은 단순히 한 개인의 감정 상태를 넘어서, 인간 존재의 본질과 깊은 관련이 있는 정서다. 인간은 실수를 하고, 상처를 받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생긴 감정이 뼛속까지 새겨질 만큼 강렬할 때, 우리는 그것을 각골통한이라 부른다.

이 사자성어는 단순히 쓰여지기 위한 표현이 아니라, 삶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실체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 감정은 때로는 예술이 되고, 때로는 행동이 되며, 또 다른 이에게는 공감과 치유의 메시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