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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수필

망각주기 주의보: 왜 우리는 안 좋은 기억보다 좋은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하는가.

by OK2BU 2026. 1. 13.

근 10년 만에 한라산 백록담에 다녀왔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과거 다녀왔던 한라산의 좋았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더구나 겨울의 한라산에서 눈꽃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기대가 점점 커졌습니다.

 

결국 결행하였고 다시 산을 오르내리면서 발톱이 빠지고 나서야 잊고 있던 기억이 생각났습니다.

 

아, 이래서 내가 다시 오는데 10년이나 걸린 거였구나. 왜 사람은 이처럼 안 좋았던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이 오래 남을까요.

 

정답을 알아보겠습니다.

 

왜 우리는 안 좋은 기억보다 좋은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하는가

기억의 선택적 보존 현상과 망각주기에 대한 심층 분석

사람은 과거를 객관적으로 저장하는 존재가 아니다.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재구성되는 경험이며, 이 과정에서 감정·해석·현재의 상태가 끊임없이 개입한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었던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을 더 선명하게 떠올리고, 부정적인 경험은 흐릿해지거나 의미가 축소된 채 남게 된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왜 발생하는지, 그리고 기억이 사라지는 과정인 **망각주기(forgetting curve)**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를 인지심리학·신경과학 관점에서 상세히 분석한다.


1. 기억은 저장이 아니라 재구성이다

1-1. 인간 기억의 기본 구조

기억은 일반적으로 감각기억, 단기기억, 장기기억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장기기억에 저장된 정보조차도 원본 그대로 보존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억은 회상될 때마다 현재의 정서 상태, 신념, 맥락에 맞게 다시 조합된다.

즉, 기억은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파일이 아니라, 불러올 때마다 다시 쓰여지는 문서에 가깝다. 이 특성 때문에 동일한 사건도 시간이 흐를수록 다르게 기억된다.


2. 안 좋은 기억이 약화되는 심리적 메커니즘

2-1. 긍정 편향(Positivity Bias)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긍정적인 정보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부정적인 정보의 중요도를 낮추는 경향을 긍정 편향이라고 부른다. 특히 성인 이후, 그리고 연령이 증가할수록 이 경향은 더욱 강해진다.

이는 단순한 낙관주의가 아니라 정서적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적응 전략이다. 부정적 기억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스트레스 반응이 반복적으로 활성화되기 때문에, 뇌는 이를 점진적으로 약화시킨다.


2-2. 정서 조절 기능으로서의 망각

뇌의 관점에서 망각은 결함이 아니라 기능이다.
특히 편도체와 전전두엽의 상호작용을 통해, 정서적 위협을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정보로 분류하면 해당 기억의 접근성이 낮아진다.

즉,

  • 해결된 갈등
  • 지나간 실패
  • 현재의 생존과 무관한 위협

이러한 기억들은 의도적이지 않게 희미해진다. 이것이 안 좋은 기억이 상대적으로 빨리 사라지는 중요한 이유다.


3. 좋은 기억이 더 오래 남는 이유

3-1. 보상 회로와 기억의 강화

즐거운 경험, 성취, 애착이 형성된 사건은 도파민 분비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도파민은 단순한 쾌락 물질이 아니라 기억 강화 신호 역할을 한다.

보상이 동반된 경험은 해마에서 더 강하게 부호화되고, 반복 회상 시에도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이로 인해 좋은 기억은:

  • 더 자주 떠오르고
  • 더 선명하게 재구성되며
  • 정서적으로 미화될 가능성이 높다

3-2. 회상 빈도의 차이

기억의 지속성은 얼마나 자주 떠올리느냐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좋은 기억은 대화, 회상, 사진, 기록을 통해 반복적으로 활성화된다. 반면 부정적 기억은 의식적으로 회피되는 경우가 많다.

회상되지 않는 기억은 신경 연결이 약화되며, 이는 곧 망각으로 이어진다.


4. 망각주기(Forgetting Curve)의 과학적 원리

4-1.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

독일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는 학습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이 급격히 감소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이를 망각주기라 부른다.

일반적인 패턴은 다음과 같다.

  • 학습 직후: 기억 유지율 매우 높음
  • 24시간 이내: 급격한 감소
  • 이후: 점진적 완화

중요한 점은 망각이 선형이 아니라 초기 급감 후 완만해진다는 것이다.


4-2. 감정은 망각주기를 변화시킨다

에빙하우스의 실험은 무의미한 음절을 기반으로 했지만, 실제 삶의 기억은 감정이 개입된다. 감정이 강할수록 망각주기는 완만해진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역설이 있다.

  •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기억은 초기에는 강하게 남지만
  • 장기적으로는 방어 기제로 인해 접근성이 제한된다

즉, 기억의 강도와 지속성은 단순히 감정의 크기가 아니라 정서 처리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5. 기억의 미화 현상과 인생 서사의 재구성

5-1. 회상적 재평가(Retrospective Reappraisal)

시간이 흐르면 과거의 고통은 “의미 있는 경험”, “성장의 계기”로 재해석된다. 이를 회상적 재평가라 한다. 이 과정에서 부정적 감정은 줄어들고, 긍정적 의미가 덧붙여진다.

결과적으로 기억 자체가 변형된다.
사건은 같지만, 기억의 정서적 색채는 완전히 달라진다.


5-2. 자아 정체성과 기억 선택

인간은 자신의 현재 정체성을 지지하는 기억을 선별적으로 유지한다. 지금의 내가 안정적이고 긍정적일수록, 과거의 부정적 기억은 현재의 자아 서사와 충돌하기 때문에 약화된다.

즉, 기억은 과거를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나를 유지하기 위해 재편집된다.


6. 안 좋은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경우

6-1. 외상 기억과 예외적 상황

모든 부정적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트라우마, 반복적 학대, 생존 위협과 직결된 경험은 일반적인 망각주기를 따르지 않는다.

이 경우 기억은:

  • 과도하게 생생하며
  • 비자발적으로 재현되고
  • 시간과 무관하게 유지된다

이는 정상적인 기억 처리 과정이 아니라 위협 감시 체계가 종료되지 않은 상태로 이해해야 한다.


7. 결론: 망각은 인간의 결함이 아니라 지능이다

안 좋은 기억보다 좋은 기억이 더 오래 남는 현상은 감상적인 낭만이 아니라 진화적·신경학적으로 설계된 기능이다. 망각은 우리를 둔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다.

우리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지 않음으로써,

  • 감정적 균형을 유지하고
  • 미래를 향한 동기를 보존하며
  • 자기 서사를 지속적으로 갱신한다

결국 기억은 진실의 저장소가 아니라, 삶을 지속하기 위한 도구다. 그리고 좋은 기억이 남는다는 사실은 인간이 생존뿐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도록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