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이후 10년. 그리고 모가디슈를 거쳐, 류승완 감독이 다시 첩보 장르로 돌아왔다. 신작 휴민트는 「베를린」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기획 단계부터 상당한 기대를 모았다. 냉전적 긴장, 남북 정보전, 이념과 생존 사이에서 흔들리는 개인의 초상. 이러한 요소는 이미 「베를린」에서 강렬하게 구현된 바 있다.
그러나 영화를 관람한 뒤 남는 인상은 분명했다. 「휴민트」는 세계관을 확장했다기보다, 오히려 그 밀도를 희석시킨 작품에 가깝다. 이 글에서는 왜 그렇게 느껴졌는지, 연출·서사·캐릭터·장르적 완성도 측면에서 구조적으로 분석해 본다.


「베를린」이 구축했던 긴장의 구조
공간이 곧 서사였던 영화
「베를린」은 도시 자체가 서사의 장치로 기능했다. 독일 베를린이라는 공간은 냉전의 잔재와 국제 정보전의 교차점이라는 상징성을 지녔다. 카메라는 인물보다 공간을 먼저 제시했고, 그 공간이 곧 인물의 운명을 규정했다.
액션은 화려했지만, 단순한 볼거리에 머물지 않았다. 총격전과 추격전은 인물의 선택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서사의 압력이 인물의 몸을 통해 표출되는 방식이었다.
개인의 비극이 국가의 서사와 충돌할 때
「베를린」의 핵심은 ‘첩보’가 아니라 ‘비극’이었다. 개인이 체제 속에서 소모되는 구조, 충성의 대상이 무너졌을 때의 공허함, 사랑과 의심이 뒤섞인 관계. 이 정서적 밀도가 영화의 무게를 만들었다.
「휴민트」의 확장 시도와 그 한계
10년 후라는 설정의 상징성
「휴민트」는 10년이라는 시간 간극을 설정한다. 이 시간은 단순한 배경 변화가 아니라, 세계 질서의 변화를 반영해야 하는 장치다. 그러나 영화는 이 시간적 변화가 인물과 세계에 어떤 구조적 영향을 미쳤는지를 충분히 탐구하지 않는다.
설정은 확장되었지만, 세계는 깊어지지 않았다.
‘휴민트’라는 개념의 소모
HUMINT(휴민트)는 ‘인적 정보’를 의미한다. 즉, 인간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 수집이다. 이는 디지털 감시와 대비되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첩보 방식이다. 개념 자체는 흥미롭다.
그러나 영화는 이 개념을 드라마로 구체화하지 못한다. 인간을 매개로 한 정보전이라면, 관계의 긴장과 배신, 심리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서사는 표면적 사건 전개에 머물고, 인물 간 심리적 교차는 충분히 축적되지 않는다.
캐릭터의 밀도와 설득력 문제
인물은 존재하지만, 축적은 없다
「베를린」의 인물들은 몇 장면만으로도 배경과 신념이 느껴졌다. 반면 「휴민트」의 인물들은 기능적으로 움직인다. 목표는 분명하지만, 그 목표에 이르는 감정의 층위가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인물의 선택이 서사의 필연이 아니라, 장면 전환의 필요처럼 보이는 순간이 발생한다.
감정의 공백
첩보 장르는 차가운 장르다. 그러나 차가움 속에서도 감정의 미세한 균열이 존재해야 한다. 「모가디슈」에서 보여준 집단적 긴장과 연대의 정서는 관객을 몰입하게 만들었다.
「휴민트」는 오히려 감정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듯한 인상을 준다. 문제는 그 빈자리를 대체할 철학적 질문이나 구조적 통찰도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액션과 연출의 질적 차이
장면은 세련되었지만, 무게는 가볍다
류승완 감독의 액션 연출은 여전히 기술적으로 뛰어나다. 카메라 워크와 편집은 안정적이며, 리듬감도 유지된다. 그러나 액션이 서사를 밀어 올리기보다는, 독립된 세트피스처럼 느껴진다.
즉, 액션은 많지만 긴장은 얕다.
반복되는 장르 문법
첩보 장르의 문법은 분명 존재한다. 잠입, 배신, 이중 스파이, 추적. 문제는 이 요소들이 새롭게 재구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관객은 이미 많은 글로벌 첩보 영화를 통해 이 문법에 익숙하다.
따라서 단순 반복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모가디슈」와의 비교에서 드러나는 간극
공간과 인간의 밀착도
「모가디슈」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집단 서사였다. 공간의 위기와 인간의 생존이 밀착되어 있었다. 반면 「휴민트」는 세계 정세를 다루지만, 그것이 인물의 피부에 와닿는 방식은 약하다.
관객은 세계의 위기를 ‘이해’하지만, ‘체감’ 하지는 못한다.
드라마의 응축력 부족
「모가디슈」는 서사가 응축되어 있었다. 선택의 순간마다 감정이 쌓였고, 긴장이 축적되었다. 「휴민트」는 사건은 많지만 응축이 부족하다. 장면은 이어지지만, 감정은 축적되지 않는다.
왜 ‘속색이 있는 졸작’처럼 느껴졌는가
이 표현은 자극적일 수 있지만, 정확한 감상에 가깝다. 영화는 분명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낮지 않다. 그러나 세계관 확장이라는 기대에 비해 서사적 야심은 충분히 구현되지 않았다.
- 설정은 크지만 드라마는 작고
- 액션은 화려하지만 정서는 얕으며
- 세계는 넓어졌지만 인물은 평면적이다
이 간극이 실망을 만든다.
세계관의 공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휴민트」는 「베를린」의 후속이라기보다, 그 세계의 변주에 가깝다. 그러나 변주는 원작의 핵심을 재해석하거나 확장해야 의미를 가진다. 이번 작품은 그 핵심, 즉 체제 속 개인의 비극과 선택의 무게를 충분히 계승하지 못했다.
류승완 감독은 여전히 장르적 감각이 뛰어난 감독이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그 장점이 구조적 밀도로 이어지지 못한 사례로 남는다.
세계관은 공유되었지만, 감정의 밀도는 공유되지 않았다.
그래서 「휴민트」는 기대만큼의 무게를 갖지 못한 채, 아쉬움으로 남는다.
쿠키영상은 없다.
영화제작의 시간기 촉박했는지 예산이 부족했는지, 영화의 텐션이 아니라 제작에 쫓기는 듯 한 긴장감이 더 긴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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